그간 남자들이 창출하고 강화해온 스테레오 타입과는 전혀 다르게,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건 상관없이 주체적인 힘, 강력한 회복력, 정체성을 갖고 작동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디언
<리뷰>
사이행성에서 새롭게 출간하는 도서인 <어려운 여자들>(원제 Difficult Women) 독서를 마치고 나서 나는 인간이 입체적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가끔 잊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여덟 개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조금은 힘들었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로 채워진 그녀들의 삶이었지만, 그 순간을 살아내는 그녀들이 그 순간에 겪었을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나도 어딘가 상처입고 어딘가 도망쳐야만 했던 음울한 환경에 놓였던 기억이 자극되어서 그런것인가 하는 생각에 읽는 기분이 쓰다.
여성의 삶엔 그런 일일이 말로 설명하기에도 지치는 상처와 음울한 기억들이 도처에 널린 것 같다.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랑의 형태로든 폭력의 형태로든 그 기억들은 여성의 몸에 새겨지고 분노도 함께 몸에 갇힌다.
어린 두 자매가 자비를 구걸해도 들어주지 않았던 성폭행 범이 가석방을 원하여 용서를 구걸하게 되는 아이러니, 엉망진창인 남자를 만나고 술에 젖어 과거에 사는 아버지를 부양하는 답답함, 부양에 대한 책임을 자매에게로 미루는 남자형제들이 내미는 20달러에 느꼈을 역겨움 같은 것들이 쓰다.
여성으로서 화자들은 끊임없이 주변 환경에 가득한 일상적인 장애물이나 좌절의 경험을 말한다. 나를 더 이상 보호하지 않는 가부장은 오히려 과거에 축 젖어 무겁게 삶을 짓누르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아직도 일터에서 만나는 아버지뻘의 사장이나 자신에게 결혼을 약속한 사람의 형은 나를, 내 몸을, 내 삶을 위협한다. 아주 가까운 남자친구 조차도 남편조차도 교도소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알아내어 편지를 보낸 성폭행 범에 대하여, 자신의 형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입을 열어 낱낱이 사건에 대해 말했을 때, 그것을 전혀 겪은 적도 없고 겪을 리도 없는 사람이 온전히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말을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나는 트럭을 몰아 동네로부터 도망치고 캐롤라인 언니와 주인공은 교도소로부터 편지를 받고서야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서야 형부 (캐롤라인의 남편)에게 대강만을 설명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상관없이 살아야 하므로, 지금 돈을 모으고 지금 유일한 위안이 되는 사람과 함께 하여야 하므로.
입을 열어 낱낱이 사건에 대해 말했을 때, 그것을 전혀 겪은 적도 없고 겪을 리도 없는 사람이 온전히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말을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나는 트럭을 몰아 동네로부터 도망치고 캐롤라인 언니와 주인공은 교도소로부터 편지를 받고서야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서야 형부 (캐롤라인의 남편)에게 대강만을 설명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상관없이 살아야 하므로, 지금 돈을 모으고 지금 유일한 위안이 되는 사람과 함께 하여야 하므로.
어떤 행동을 하는 여성은 헤픈 여성이 되고 둔감한 여성이 되고 미친 여성이 된다. 그런데 그들은 그냥 여성이었을 뿐이다. 행위 하나하나, 몸 부위 부위가 해체되어 라벨이 붙는 여성의 삶을 텍스트로 보는 경험을 하며 다시금 그 라벨이 얼마나 불합리 한 것인가를 생각한다.
난 문학을 싫어한다. 문학이 여성을 해체하고 감상의 대상으로 환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싫다. 록산 게이의 신작인 <어려운 여자들>은 문학이다. 이 책은 나와 닮은, 내 몸에 새겨진 어떤 경험을 이야기 한다. 내 삶의 어떤 고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유쾌하지는 않다. 그런데 나는 에피소드속의 삶을 사는 각각의 여성들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어떤 라벨도 붙이지 않는다. 그저 어려운 여자들이 되어버린 그녀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럴만 했다거나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이해를 하게 될 뿐이다. 이 책이 널리 읽혀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평가하지 않고 그저 삶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쓴맛 나는 그 삶에 조용한 응원을 보내는 것이 가능할까.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능할까. 그저 응원을 보내는 것이 가능할까.
저자 소개
한국에서 <나쁜 페미니스트>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록산 게이는, 여러 권의 소설을 출간한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이며, 퍼듀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며칠 전 미국에서 출간된 몸에 관한 자전 에세이 <헝거Hunger>(2018년 1~2월 한국 출간 예정)는 뜨거운 반응과 찬사 속에 또 다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으며, 2014년 출간된 장편소설 <An Untamed State>도 현재 영화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