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literature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literature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7월 21일 금요일

록산 게이, 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어려운 여자들










그간 남자들이 창출하고 강화해온 스테레오 타입과는 전혀 다르게,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건 상관없이 주체적인 힘, 강력한 회복력, 정체성을 갖고 작동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디언





<리뷰>


  사이행성에서 새롭게 출간하는 도서인 <어려운 여자들>(원제 Difficult Women) 독서를 마치고 나서 나는 인간이 입체적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가끔 잊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여덟 개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조금은 힘들었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로 채워진 그녀들의 삶이었지만, 그 순간을 살아내는 그녀들이 그 순간에 겪었을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나도 어딘가 상처입고 어딘가 도망쳐야만 했던 음울한 환경에 놓였던 기억이 자극되어서 그런것인가 하는 생각에 읽는 기분이 쓰다.
 

  여성의 삶엔 그런 일일이 말로 설명하기에도 지치는 상처와 음울한 기억들이 도처에 널린 것 같다.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랑의 형태로든 폭력의 형태로든 그 기억들은 여성의 몸에 새겨지고 분노도 함께 몸에 갇힌다.
 
  어린 두 자매가 자비를 구걸해도 들어주지 않았던 성폭행 범이 가석방을 원하여 용서를 구걸하게 되는 아이러니, 엉망진창인 남자를 만나고 술에 젖어 과거에 사는 아버지를 부양하는 답답함, 부양에 대한 책임을 자매에게로 미루는 남자형제들이 내미는 20달러에 느꼈을 역겨움 같은 것들이 쓰다.
 


  여성으로서 화자들은 끊임없이 주변 환경에 가득한 일상적인 장애물이나 좌절의 경험을 말한다. 나를 더 이상 보호하지 않는 가부장은 오히려 과거에 축 젖어 무겁게 삶을 짓누르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아직도 일터에서 만나는 아버지뻘의 사장이나 자신에게 결혼을 약속한 사람의 형은 나를, 내 몸을, 내 삶을 위협한다. 아주 가까운 남자친구 조차도 남편조차도 교도소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알아내어 편지를 보낸 성폭행 범에 대하여, 자신의 형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입을 열어 낱낱이 사건에 대해 말했을 때, 그것을 전혀 겪은 적도 없고 겪을 리도 없는 사람이 온전히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말을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나는 트럭을 몰아 동네로부터 도망치고 캐롤라인 언니와 주인공은 교도소로부터 편지를 받고서야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서야 형부 (캐롤라인의 남편)에게 대강만을 설명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상관없이 살아야 하므로, 지금 돈을 모으고 지금 유일한 위안이 되는 사람과 함께 하여야 하므로.
 
  어떤 행동을 하는 여성은 헤픈 여성이 되고 둔감한 여성이 되고 미친 여성이 된다. 그런데 그들은 그냥 여성이었을 뿐이다. 행위 하나하나, 몸 부위 부위가 해체되어 라벨이 붙는 여성의 삶을 텍스트로 보는 경험을 하며 다시금 그 라벨이 얼마나 불합리 한 것인가를 생각한다.
 
  난 문학을 싫어한다. 문학이 여성을 해체하고 감상의 대상으로 환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싫다. 록산 게이의 신작인 <어려운 여자들>은 문학이다. 이 책은 나와 닮은, 내 몸에 새겨진 어떤 경험을 이야기 한다. 내 삶의 어떤 고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유쾌하지는 않다. 그런데 나는 에피소드속의 삶을 사는 각각의 여성들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어떤 라벨도 붙이지 않는다. 그저 어려운 여자들이 되어버린 그녀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럴만 했다거나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이해를 하게 될 뿐이다. 이 책이 널리 읽혀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평가하지 않고 그저 삶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쓴맛 나는 그 삶에 조용한 응원을 보내는 것이 가능할까.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능할까. 그저 응원을 보내는 것이 가능할까.













저자 소개

  한국에서 <나쁜 페미니스트>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록산 게이는, 여러 권의 소설을 출간한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이며, 퍼듀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며칠 전 미국에서 출간된 몸에 관한 자전 에세이 <헝거Hunger>(2018년 1~2월 한국 출간 예정)는 뜨거운 반응과 찬사 속에 또 다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으며, 2014년 출간된 장편소설 <An Untamed State>도 현재 영화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Share:

2016년 5월 15일 일요일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사진은 달(...) 출처는 여기(클릭)

*주 : 이 책은 자율성 학파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자율적으로 읽은 소설이다.


  처음엔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소설 어디에도 달과 6펜스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스트릭런드가 프랑스로 이민(..)가기 때문에 돈 얘기는 그래 봐야 20프랑이나 200프랑을 서로 빌리고 꿔주는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자율성 학파 친구들이 모인 김에 맥주를 한잔 하면서 이 책 이야길 꺼냈다. 달이나 6펜스의 뜻이 뭐겠냐는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 작품이 출간된 1919년을 기준으로 그때의 6펜스의 가치는 지금 가치로 2.17파운드 정도 된다고 한다. (계산은 여기(클릭)서) 한국 돈으로 환산해보면 5천원 정도 되는 돈.

  5천원. 예술 하는 사람들이라면 물감이나 종이를 샀을 것 같은 돈이다. 또 달리 말하면 최저 시급과 비슷한 돈 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아, 열심히 살면 시간당 이만큼은 버는데 열정을 고집하면 그마저도 없다! 뭐 이런 뉘앙스잉가?' 하고 생각했다.

매우 적절한 짤. 출처는 여기(클릭)


  1959년 서머싯 몸은 어떤 편지에서 "땅에 6펜스 떨어진걸 찾으러 다니려면 달을 올려다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반대로 달을 보면 발 앞에 떨어져있는 6펜스를 보지 못한다.)

"If you look on the ground in search of a sixpence, 

you don't look up, and so miss the moon." 

  작중의 스트릭런드는 큰 규모의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들이는 증권거래소 직원이었으니, 발 아래 아무렇게나 채일 돈을 놔두고 꿈을 쫓아 간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면 매우 적절한 제목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목에 대한 얘기는 이만 하고, 나는 작품 속에서 사람에 대한 묘사가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디르크 스트루브에 대한 작중 화자의 태도가 매우 냉소적이고 경멸적이면서도 따뜻하게 연민을 보내기도 하면서 그런 연민을 보내는 자기 자신을 짜증나하는 (...) 그런 복잡한 심경이 그랬다. 아래는 디르크 스트루브에 관한 묘사 몇 구절



 묘사 (1) 요약 :  걘 너무 멍청해서 경멸하게되는 애야 근데 또 자기가 경멸당하는 줄은 알지. 그래도 또 그 경멸하는 상대를 품어주면서 나한텐 푸념을 해. 들을 때 불쌍하면서도 빵터짐. 근데 또 작품 알아보는 눈은 기가 막히다. 근데 자기 그림은 왜 그따구로 그리나 몰라.



묘사 (2) 요약 : 슬퍼하는데도 너무 웃기게 생겼음. 하. 마음고생하는데 얼굴이 너무 좋아보임. 심리상태랑 신체상태가 조화가 저렇게까지 안되는걸 보니 웃픔. 

  또 작중 화자는, 스트릭런드의 당황스러울만큼의 자기본위적 행동이나 고집이나 냉정함 같은 것들을 대할 때도 묘하게 뿌리치지 못하는데, 그 심리 상태에 대한 서술이 재미지다. 스트릭런드와 작중 화자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화는 아래와 같다.



스트릭런드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서 월급쟁이 및 가족의 일원이 되게 설득해달라는 
미션을 받은 사람 답게 작중 화자의 대응이 자못 냉철하다

어느날 스트릭랜드는 내게 "여보오, 50프랑만 빌려주시오" 라고 말했다. "생각만 해도 싫군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어째서?" "재미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돈에 몹시 곤란을 받고 있소." "그런 것은 내가 알 바 아닙니다." "그럼 내가 굶어 죽어도 당신은 상관 없다는 말이오?" " 왜요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라고 내가 대답하자 그는 지저분하고 더러운 턱수염을 만지면서 1,2분 가량 내 얼굴을 응시했다. 나는 싱긋 웃어주었다. "여보, 뭐가 그리 우습소?" 그는 노여움에 눈을 번뜩이면서 말했다. "선생은 참으로 단순하시군요, 의리따위는 전혀 인정하시지 않죠? 그러시다면 이쪽 역시 아무런 의리도 없는 겁니다."


는 훼이크
쿵짝이 잘맞는다.


"체스나 하실까요?" 하고 내가 물었다.
"그럽시다."
우리들은 체스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그것이 끝나자 그는 즐거운 듯한 눈으로 그것을 둘러보았다. 전투 준비를 끝낸 부하 병사를 바라보는 장군의 만족이 떠올라 있었다.
"내가 돈을 빌려드릴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라고 나는 물었다.
"물론 빌려주지 않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소,"
"실은 저도 놀랐습니다."
"어째서?"
"선생이란 위인의 마음속이 센티멘탈하다는 것을 알고 낙심했습니다. 그런식으로 드러내놓고 동정을 구하다니 선생만은 그런 행동을 안 하시기를 바랐던 겁니다."
"나 역시 그래서 당신이 마음을 움직였다면 경멸했을 거요." 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것은 다행이로군요," 나는 웃었다.

또, 스트릭런드의 멘탈상태를 잘 보여주는 대목은 아래와 같다.


스트릭런드가 다시 영국에 돌아오도록 설득하라는 미션을 받은 작중 화자가 
진지한체 하며 칸트를 인용하니 스트릭랜드가 받아치는 대목


"그러나 말입니다. 만약에 모두가 선생과 같은 행동을 한다면, 이 세상은 엉망이 될 것입니다." "그런 어리석은 말은 하지 않는게 좋을 거요. 모두가 내 흉내를 내고 싶어한다는 일이 있을 수 있나요. 대개 인간은 흔히 있는 일로 만족하기 마련이오." 나는 한번은 또 빈정거려서 말했다. "선생은 이런 격언은 믿지 않으시는 모양이죠. 아시겠습니까?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의 법칙이 되도록 행동하라." 이런 것입니다만," "들은적이 없는데, 하지만 가장 어리석은 말이요." "하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칸트입니다." "누가 말했든지 그런건 알 바 아니오. 어쨌든 더할나위 없이 어리석은 말이오."


  인물들이 재미있어서 금방 읽었다. (여러분도 읽으세유) 스트릭랜드의 삶이 고갱의 삶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완전 다른 것 같은데, 나도 박효신의 삶을 모티프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소설을 함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
Share:

Categories

Popu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