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5일 월요일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오혜진


[ 상어 ] 독서모임 3월 도서 서평

2020 4 4

+ 메모
얼마전에 트위터에서 그런 글이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었다. 지금 30대인 사람들이 무슨 IMF 하냐고. 멘션을 남긴 화자가 보인 것은 우리으른들이 겪은 경제위기를 못겼어봤을 거라는 배제적인 태도이다. 마찬가지로우리 남성들이 겪었던 도시과, 군부독재, 민주화운동 같은 보편성과 세대론적 코드에서 여성들은 너무나도 쉽게 배제된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동료 시민이라는 의식이 희박한 경우에만 가능한 몰상식한 말인데도 여성 작가의 작품이나 여성서사는 쉽게 주변화되고marginalised,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일까? 나는 주류 문학계가 미는 소위 유명한 작품, 베스트 셀러, 스테디셀러라라는 것들이 무척 갑갑하고 지루했다. ‘ 배제하고 돌아가는 이야기가 독자에게 흥미로 울리가 있을까. 아저씨 독자들이 떠나고 자리를 채우는 것은 여성 독자 들인데, 그들을 배제하고 문학 필드가 수가 있을까. 비평계가 소위전통적 소재가 외면받는다' 개탄을 보일 솔직히 시대 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책을 읽으며 정말 이상했던 것은, 저자가 박근혜와 김연아의 사례를 대비하며 논한 싱글여성의 투명함과이야깃 거리 대해서 논한 부분 이라던가 용산 참사와 세월호에 관하여 얼마나 저열하고 품위 없는감상들이 창궐 했는 가를 말하는 부분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싶었다는 점이다. 정신적으로 총알(텍스트) 튕겨 내는 상태가 같았다. 내가 가장지겹게생각하는 류의 저열한 사람들이 너무 자주 공격하는 부분들을 글로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못읽어본 책들을 읽고, 다음에 다시 책에서 놓친 챕터 들을 다시 읽고, 다음에야 다시 천천히 선생님의 비평을 따라가야 같다.
전체적으로는 재미난 책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재미나게 수가 있을까 싶은 문장들을 마주치면 문장들을 표시하려고 자주 멈춰야 했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던 부분들을 언어로 명료히 해냈을까 하는 감탄이 나오던 작고 도톰 했던 독서. 여전히 번에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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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저씨 독자가 떠난자리
[ 1 ] ‘장편의 시대이야기꾼 우울
오랜 남성 중심의 한국문학사와 등치 되는 굵고 강렬하고 멈출줄 모르는 서사. 이는이야기라는 원형을 빌려 기왕의 이성애자 남성지식인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문학사의 전통을 자연화 하고자 하는 욕망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는 이야기의 세계남성의 세계 전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같은 이야기꾼이라고 하더라도 이야기에 대한 비평의 측면에서 다뤄지는 한명관과 다르게 상업적 성공 가능한 기술방식의 소설 생산이라는 테크닉 측면에서 다뤄지는 정유정을 대비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안팔리는 남류 문학은 내재된 이야기의 가치가 있어 외면 받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인 처럼 포장되지만, 안팔리는여성서사 혹은 여성 작가의 작품은 그런 것이 원래 시장의 속성 이라서, 독자들은 원래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아서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런 와중에 팔리기까지 하는 여성의 작품, 여성에 의한 작품이 있다면 비평가들은 마치우리 아들이 공부를 못하고 여자애들이 잘하고 있는데 비결이 뭐냐 어디 물어나 보자라는 태도의 학부모처럼 소설에서 어떤 테크닉을 썼는지를 묻는다. 그리고는 이어서 어설픈고나리질 한다. 소설이 그렇게 기술에만 치우치면 못써. 깊이가 있어야지 .
그게 정확하게 한명관과 정유정을 비평계와 출판계가 다루는 방식 이었던 같다. 오혜진 비평가의 글을 빌어서 비로소 차이를 명쾌하게 알게 되었다.
첫번째 장에서 저자는 풍부한 사례를 들어 천명관이 어째서 시대의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서사의 중심에 연루되어 있는지, 그러한 모습이 시대에 무슨 말이든 얹고자 하는아저씨 독자들 어떻게 대변해왔는지 밝혔다.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 닿지는 않았던 것은 아쉽다. 
[ 2 ] 한국문학의속지주의 묻다
한국 문학에서 외국성을 진지하게 다룬 적이 있을까? 한국의 측면을 기술되기 위한 장치로 외국인들이 작품의 소재로 쓰인 적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국이라는 장소를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익숙한 장소에 놓인이물(외부의 )’ 기술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문학이어야만 한국의 현실을 다룰 있다는 생각. 저자는 이를 속지주의적인 공간의식이라고 소개한다. 한국이라는 장소와 한국인 모두 등장하지 않는 내셔널리티가 없는 천명관의 작품은 보편성을 추구하는 작가의 자의식을 보여준다. 외국성을 다룬 박민규의 시도들도 대비적으로 소개 되었다. 박민규는 외국의 의미체계를 실험적으로 다루었다.
[ 3 ]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
장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나는 아직 K문학이나 비평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하는데 종말이 이미 왔다고? 한국 문학 메인스트림에서 이제 시장성을 추구하는 것은 숨겨야할 태도가 아니게 되었다. 작가는 오히려 세계화를 이끌어갈 천재를 발굴해내고, 세계문학이나 , 영화화에서 성공하는 우리집의 자랑이 만한 작가를 찾는 가부장적이고 시장패권주의적인 욕망을 공유하는 문학계와 비평계를 꼬집는다.
여성혐오나 소수자와 약자를 폭력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고치지 않은채로 그저 많은 독자에게 읽혀 환금성 좋은 작품이 되기를, 전세계가 나를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후진국 콤플렉스, 전통적 질서에 집착하는 폐쇄적 보수성 기타 등등으로 끈끈히 엉겨붙은 아저씨 문학에 대한 희망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저자가 체질 개선을 바란다는 말을 괜히 것이 아닌데 새겨들을 남류 문학가/비평가가 있을지 궁금하다. 아니 오히려 책에 제시된대로 독자층의 변화를 보면 변화가 올지도 모르겠다.
 [ 4 ] 혐오의 시대, 한국 문학의 행방
“2000년대 이후 강력범죄 피해자의 10명중 9명이 여성인데도 여성혐오 범죄는 없다는 단언, 부국강병의 논리로 정당화되는 인종혐오와 소수자 혐오의 사례들을 떠올려보자. 소수자의 인권보다혐오할 자유 우선시되고, 가시화된 차별과 극단적인 폭력만이 혐오의 유일한 내용으로 규정될 우리의 사유는 앙상해지고 삶은 피폐해진다. 그리고 이것이 유도하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의 시선을 폭력의 스펙터클에만 잡아둠으로써 그것을 방관할 있는 안전한 자리에 분리해놓으려는 것이다
독자들이 소설을 떠났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호명되는 독자는 아저씨 독자들이다. 여전히 소설의 독자층과 구매층은 2-30 여성들이다. 그들에 부응하면서도 동시에 독자층에 전유 되어서는 곤란하다. 다만 한국문학이여성적인 것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으로 등치시키는 태도를 수정하고, 새로운 문학적 주체를 발견해 나가기 위해서는 2-30 여성을 이해해야 것이다.


2. ‘민주화이후의 질문들과 뉴웨이브
[ 1 ] 누가 민주주의를 노래하는가
역사적 현실이 자신을 핍박한다고 말하는 비주류적 남성성이 그동안 한국 문학에 주로 등장한 주인공의 핵심 정체성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소환하는 방식은 약자가 자신의 소수자성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으며 자기자신을 피해자 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대적 흐름에 비판을 가하는 정당한 주체로 거듭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서술은 이야기의 중심 화자가 되지 못하는, 사유화된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비인간화된 존재로 묘사한다. 사유의 기회를 얻지 못한 동물화, 비체화 밥벌이의 고뇌를 모르는비철학적 존재로 추락시키는 것이다.
[ 2 ] 비평의 백래시와 새로운페미니스트 서사 도래
여성화된 삶의 곤경을 말하는 작품들, 페미니즘이 한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진 점을 두고 백래시를 가하는 비평가 들이 있다. 예컨데 복도훈은 페미니즘을정치적 올바른 문학을 요구하는 일종의 잔소리정도로 취급한다. 이러한 반동적 비평들이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 개념에 내재한 역사성과 정치적 함의를 일축해버린다. 
저자는 최근 정말 페미니즘 소설이 정치적 올바름에 사로잡혀있는지, 정치적 올바름이 나쁜 것인지를 검토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갇혀있다는 부당한 비평에 마주한 82년생 김지영은 오히려 남성과 여성, 중산층의 이성애적 만남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치적으로 뭉툭하다. 정치적 상상력 대신 순진하고 무고한 피해자라는 전형을 체화하고 있다. 김지영은 싸우는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김지영을 정치적 올바름에 사로잡힌 인간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비평계가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의도된무지와 혐오.
3. 떠나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 1 ] ‘성장이라는 외상을 견디는여자들의 세계
한국문학에서 한국을 떠나고자 하는 여성의 욕망은 친숙하다. 최은영의 작품에도 과감히 출가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이국을 활보하며 감행하는 그녀들의 자아실험은 그녀들이 세계경험을 자아실현의 유력한 수단이자 징표로 삼게된 세대, 세계를 무대로 기량을 펼칠 것이 요구되던 신자유주의 시대의 아이들임을 지시한다. 
떠남의 목적은 구시대적 규율을 떠나 개인의 역량에 모든것이 달려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데 있다.
[ 2 ] ‘즐거운 살인여성스릴러 정치적 가능성
강화길의 [ 서우 ] 등장하는 여성 도시 하층계급에 속한 여성이다. 존재조건 자체는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나 죄담의 화소가 되는 사회라면 그녀는 결코 근본적 의미에서의 순수악, 사이코패스조차 없다. 
여성을 혐오하는 사회에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그녀의 신체와 정신은 이미 그녀가 맞서고자 하는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페티시로만 이해되기 때문이다.
비평으로 다뤄진 작품 (읽을거리) 
- 아래 작품을 읽어보고 비평 페이지를 다시 봐야
전경린의 소설집천사는 여기 머문다
조선희세여자:20세기의
명지현눈의 황홀
4. 우리 각자의 솔기와 봉합선
퀴어서사와 아포칼립스적 상상력
최진영해가 지는 곳으로
성소수자 삶을 서사화 하는 것을소재주의라고 쉽게 일축할 있을 것인가. 성소수자는 세계의 총체성을 조망하는 인물로 기용되지는 않는다. 보편의 세계를 기술하는 언어는 그래서 보편이 아니라는 점이 선명해진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불완전한 보편의 세계
성장의 시간을 서술하는 형태가 장편소설. 퀴어의 성장이 보편의 세계가 규정하는 성장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기기 때문에 그런 같다. 저자는 여기에서 서사의 공백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기준영우리가 통과한
4. 계량된 슬픔, 선별된 불행
용산 참사, 세월호에 관한 비평 (생략)

더 읽어볼 작품들

최은영의 소설 <쇼코의 미소>
박상영 김봉근

하나코는 없다

391,

김혜진 작가 딸에 대하여 (여성 퀴어 소설)
최진영 작가 해가 지는 곳으로 (SF장르) - 430

420 윤이형 <루카>
영화 윤희에게


윤희영 / 붕대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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