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4일 토요일

13강 정의론(i)

13 정의론 (1)

정의에 대한 추구와 고뇌

법의 핵심 이념이 정의이고, 법이 지향해야할 것이 정의라고 하는 점에서 정의는 법철학의 꽃이라고 있다.

1905 러시아 혁명, 세르게이 대공을 암살한 사회주의 테러리스트들을 모티브로 까뮈의 <정의의 사람들> 정의와 인간의 존업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문제가 나온다. 다섯명의 테러리스트들은 전체주의를 반대하고 암살을 기획한다. 그러나 결전의 , 폭탄 던지기로 칼리아예프는 대공의 어린 조카가 마차에 함께 탔다는 것을 목격하고 암살을 포기한다. 이계획이 실패하자 극단적 희생이 필요성과 인간성 사이에서 고민한다. 다시 기회를 얻고난 이후 대공을 암살하고 체포된다. 감옥에 갇힌 칼리아예프에 대공의 부인이 찾아오지만 구명의 손길을 거부하고 사형장으로 향한다. 짜르체제에서 짓눌린 시민의 삶을 위해 암살하는 사람들의 고뇌가 담겨있는 대목에서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정의의 문제, 정의의 판단은 사람들과 사람사이의 상호작용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도덕적이고 올바르냐는 판단을 하는 특수한 분야라고 있다. 정의의 문제가 생겨나는 맥락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협동을 통해서 재화를 만들고, 그것을 나누는데 있다. 과정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람들이 제안하고 기여하는데 무임승차 하는 경우 행동을 요구하거나 협동의 생산물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할때 이득과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사람들 사이에 무척 관심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요구가 다원적이기때문에 저의의 판단은 사람들에게 닿아있고 이해관계에 밀접한 연관을 가진 어려운 문제인것 같다.

정의는 외딴섬에서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법은 타인과의 공동생활속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바탕으로 볼때 법과 정의는 뗄수 없는 관계다

권리의무가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느냐의 문제는 결국 이익과 부담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해야하는가 하는 정의의 문제라고 있다. 그래서 법과 정의는 필연적 연관성을 갖는다고 말할 있다.

라틴어에서 jus 올바른것, 정의, , 권리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유스jus 법과 정의가 같은것인가? 하는 질문을 낳게 한다. 근원은 같지만 법이 사람과 사이를 규율하기 위해 국가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분기되어 나오긴 했지만 원천적인 샘은 같다

법은 정의실현의 기술이다 / 법의 목적은 정의다 : 역사적으로도 근원이 같고, 인간의 생래적인 옳고 그름의 판단에서도 법과 정의는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법에는 목적이 있나? 법의 이념

빅토르위고의 레미제라블 :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법을 논하며 법의 목적이 무엇인지 논한다. 빵한조각과 탈옥 혐의로 19 복역하는 레미제라블은 가석방된다. 그러나 전과자이기때문에 세상은 박대한다. 세상의 외면으로 장발장은 미움과 반대가 나타나고 마리아신부가 호의를 베푼다. 그러나 곤궁한 처지의 장발장은 신부의 음식기를 훔쳐 달아나고 잡힌다. 그러나 신부는 용서를 한다. 그리고 신부의 용서로 인해 세상의 복수심을 내놓는다. 법의 화신인 자베르 경감은 레미제라블을 뒤쫒는다. 그리고 장발장은 마을의 시장으로 성공한다. 사람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장발장을 자베르가 찾아온다. 한번 도둑은 영원한 도둑이라고 생각하는 자베르는 다른 도둑이 잡혔다고 이야기하고, 장발장은 현장에 나타나고 수형기간을 얻고 다시 싸운다. , 혁명군의 포로가된 자베르를 구한다. 평생 장발장의 존재를 쫓던 자베르는 자신을 구해준 장발장 두고 인간적 양심과 혼란을 느낀다. 자베르는 자신의 굳은 신념이 가혹한 것임을 깨닫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법이 과연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법을 법답게 하는 이념은 법적 안정성과 정의 두가지다. 합목적성을 들기도 하지만, 정의를 형싱적 정의와 실질적 정의라고 한다면 실질적 정의가 합목적성이라고 있기 때문에 결국 양대기둥은 법적 안정성과 정의다.

법적 안정성의 핵심은 법의 법적 결정이 내려지고, 사태가 다음사태에서도 이어진다는 예측가능성이 핵심이다. 현존을 보장하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려면 시민들이법의 내용을 인식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명확성의 원칙이 따라나올 것이고, 법에 대해 국민이 신뢰를 하고, 일상생활을 꾸려나가고 장기적인 계획을 도모할 있다는 점이 법적안정성의 핵심 취지나 가치다.

법적 안정성이 그자체에 담겨있는 내재적 역할이라면, 정의는 법을 이끌고 현재의 법이 옳은지 아닌지 비판하고 나은 길로 이끈다

법적 안정성과 정의의 관계 : 하나의 결정이 좋든 나쁘든 결정이 내려지면 그에 따라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삶을 꾸려간다. 그러나 법적 결정이 사람들 사이의 의무와 권리를 굉장히 불공평하게 배분한다면 불만이 많아진다. 이를 보다 정의로운 방향으로 배분되어야겠다는 요구가 있다면 양자는 갈등이 생긴다.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법적 안정성을 지키는 것이 정의라고 것이고, 새로운 분배 기준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새로운법이 정의라고 것이다. 법적 안정성과 정의의 관계는 기존의 상태를 정의롭다고 보는 주장과 새로운 상태를 정의롭다고 보는 주장 사이의 충돌로 있을 것이다.

가장 법적 안정성에 합당한 것은 정의로운 것이가 가장 정의로운 것은 가장 법적 안정성이 있는 것이다 : 추상적 차원에서 맞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법적 안정성이 있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배분하는 것이라면, 개인이 계획을 꾸려나가고 신뢰하면서 있게 하는 자유를 보장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것이고 그것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정의로운 것은 결국 사람들은그것을 믿고 신뢰할 것이기에 법적 안정성이 있따.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불평등한 상태에서 법적 안정성에 치중하면 반드시 정의롭다고 없다. 법적용의 정의와 법내용의 정의와의 갈등으로도 표현해볼 있을 것이다.

장발장 : 자베르의 태도는 일단 제정된 법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법적 안정성, 형식적 적용, 법적용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장발장은 법적용의 정의가 실현되었을때 어떤식의 부정의가발생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있다.

결국 정의는 분배의 문제인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라는 말이 정의의 내용을말할때 단적으로 표현되는이유는?

정의의 문제는 결국 사람과 사람사이의 협동사이에서 생겨난 이득, 짊어질 부담을 어떻게 올바르게 배분하고 그것이 깨졌을때 다시 회복하는 것을 정의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가, 마땅히 받을만한 것을 주라는 것은 어린애들이 요구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모든인류 문화에서도 그렇고, 정의의 가장 근본 원칙이라고 있다.

정의담론의 4가지 요소

  1. 분배의 대상 : 무엇을 본배할 것인가?
  2. 분배의 대상자 : 누구에게 것인가?
  3. 분배의 기준 : 어떤 기준으로 분배할 것인가?
  4. 분배의 주체 : 누가 분배의 내용을 정하는 주체인가?

정의의 기준

전태일은 봉제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다 사망한 노동운동가다. 하루 14시간일하는 열악한 환경, 17 정도의 어린 시다공들은 저임금에 시달리며 극심한 노동에 시달린다. 그는 동료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알리고 노동청, 청와대, 신문사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의 활동에 앞장선다.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통해, 법이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그러나 경찰, 사업주 행정기관의 조직적인 방해로 전태일은 불을 붙여 분신한다.

정의와 관해 우리가 일단 잡을 있는 기본적인 기준은각자에게 그의 것을이라고 , 무엇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누가 주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네가지의 요소 말고도 다른 것들이 필요하지 않은가에 대한 생각이 든다.

정의의 판단에는 보이는 형태의 재화 말고도 함께 가야하는 정의의 기준이 있어야 같다.

전태일 열사는 정의의 판단중에 어떤점이 보완되어야 한다. 누구에게 재화를 귀속시킬ㅈ것인가에 대한 배분대상자가 확대되어온 역사가 있다. , 배분할때 사회 경제적 기본권만 있는것이라고 생각할 있는데, 인정이나 멸시나 승인이라는 감정적인 분배 대상도 중요한 정의로움의 대상이다. 그전까지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만 여겨졌던 노동자의 이야기가 의미있는 사회 정치적인 목소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의 판단의 대상으로 함꼐 논의할 있는 대상이 넓어지는 역사, 사회 제도나 정서, 문화적 상징까지도 포함시켜서 논의해야 오온전한 정의론이 된다. 철거민의 경우 다른 사람의 토지에 불법 건축을 해야 하는데, 주민등록 신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비닐하우스 주소전입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판시했고, 그들을 울사회 국민으로, 정의 판단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표현이기 때문에 동등한 인간 존엄성, 시민으로서 멸시하지 않는것, 2등국민이 되지 않는것이라는 점에서 볼때 이는 정의의 대상을 확대시켜온 역사로 중요한 전환이 판결이라고 있다.

개인의 영달만을 최고로 여기는삶이 행복할 있을까? 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 세무변호사로 잘나가던 송우석은 밥값신세를 아들때문에 뜻하지 ㅇ낳은 사건에 휘말린다. 국밥집 아들의 변호를 하면서 법과 상식으로 비장한 송우석은 다섯차례의 공판을 통해 공권력에 의한 피해와 부조리를 고발했다. 송우석이 정의에 눈을 뜨는 내용이다.

정의를 논할떄 정의는 혼자있을때, 개인으로 있을때 의미없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있을때 정의의 이갸기가 좀더 의미있을 것이다. 정의는사회정의라고 말할 있을 것이다. 각자에게 그의 것을이라는 이야기 만으로는 풍부한 내용과 현실적인 내용을 모두 담지 못할 것이다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에 더불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한다는 원칙 중요한 기준일 있다. , 인간의 존엄성 원리라는 것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 세가지를 기본 단위로 삼아 중요한재화 배분을 어떻게 구체화 되고 발전시켜야할지 생각해보면, 정의판단이 확대되고 제대로 건축물로 토대로 좋을 것이다.

같다면 같게 대우하고, 다르면 다르게 대우해라 : 두가지 요청이 들어있다. 세상에는 정당하지못한 평등배분이 있고, 정당한 평등, 정당한 불평등이 있다. 정당하지 못한 평등도 있다.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죽이면 평등하긴 하지만 누구나 부당하다고 얘기할 있다

헌재 결정문 : 한국사회의 평등은 상대적 평등이다. 합리적 차등대우가 가능하다. 기준은 어떤 배분이 동등한 인간 존엄성의 원리를 실현하는데 좋은 수단인가?하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사회의 약자를 처지를 낫게 하는데 불평등한 배분이 도움이 된다면, 동등한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는데 불평등한 배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합리적인 정의로운 불평등이다. 우리헌법재판소의 취지를 이해해서 확대시키면 그런식으로 이해할 있을 같다.

응분의 ? : 응분이라는단어는 마땅히 받을만한이라는 뜻이다. 범죄자의 처벌을 사람들은 응분의 처벌이라고도 한다. 박지성선수가 열심히 축구를 하면 그에게 마땅히 돌아가야하는 명예가 있다. 노력과 성과에 따라서 차등대우 하기도 한다. 같은 노력을 하고 같은 성과를 내면 다르게 분배하는 것이 정당하다

정당한 평등, 정당한 불평등이 합리적이라고 해도, 사람이라면 최소한으로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것은 갖춰야 하는 것이 정의롭다. 응분의 몫은 가장 기본적인 감이다. 여기에는기본 전제가 있는데, 어떤 범죄자가 자기가 선택하지 않고 책임이 없는것에 대한 형벌을 부과하면 그것은 부정의하다고 한다. 노력이든 성과든 범죄든 자기가 선택을 하고 책임을 있는 범위가 응분의 자격이 통용되는 범위이다. 선택할 있는 책임질수있는 능력을 보장해주려면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고 토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으면 선택과 책임을 없다. 응분의 자격을 정의의 기준으로 작동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기본적 필요가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비로소 응분기준이 작동될 있을 것이다.

기본적 필요 : 인간 시민으로 살기 위해서 반드시 충족되어야할 근본적 조건을 내용으로 하는 재화들에 대한 필요

사회 정의 차원으로 해보면전입신고 사례에서 처럼, 한국 구민이 전입신고 하지 못하면 기초수급권, 초등학교 어디갈지, 정치참여등이 제한이 된다. 그것들은 시민으로서 마땅이 해야 하는 권리행사의 토대가 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갖춰야될 기본적인 필요는 정의를 판단할때 가장 기초가 되는 토대가 된다.


정의는 개인의 자율과도 관련이 되어있다. 자기가 자율성을 갖지 못한다면 어떤 정의론도 무너진다. 결국 정의가 보장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이,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기삶을 꾸려가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장기적으로 계획을 꾸리고 쫒아 형성하는 능력을 보장하고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이므로 자유가 박탈당하며 정의의 가치는 사라진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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