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강 정의론 (2)
부의 분배와 공평과세를 위해 우리나라에도 부유세를 도입해야한다고 하는 논의가 일고 있다. 스웨덴을 비롯해 이미 도입한 나라들은 폐지하는 추세다. 부유세는 부자에게 세율을 좀더 높게 적용해 부의 불평등 분배를 완화하고 세수확보를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재산해외도피, 이중과세, 투자의욕상실, 프랑스 증세 피해 세금망명하는 등의 역효과가 그것이다. 워렌버핏은 부자가 시민보다 낮은 세율을 낸다며 부자증세에 힘을 싣고 있으나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경제발전이 먼저인가 부의 재분배가 우선인가는 여전히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2014년 oecd는 소득불평등의 심화를 경고하면서 부자증세의 세제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부자 감세가 논란된적 있으나 소득불균형 심화에 대한 우려로 시행되지 않앗다. 부유세와 조세평등중 어떤 것이 더 합당한가?
돈, 경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다. 현대사회에서의 사회 정의는 경제적 재화를 중심으로 논하는 것도 사회정의의 핵심이 되는 것은 이때문이다. 사회정의를 논하며 세가지 기준을 전에 제시한바있다. 응분의 몫, 같은것은 같게 다른것은 다르게 대후하고, 동등한 인간존엄성이 그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재화와 관련해 무엇이 정의인가를 논할때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에 대한 해석에 따라 정의 파악의 내용이 달라진다.
자유로운 선택은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 자유지상주의 정의론
각자가 자기몫을 누리는 것이 정의다. 타인과 바꾸려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교환을 하면 항상 정의롭다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자유를 중심으로 정의를 논하는 것이다. 소유권은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정의라고 파악한다.
이는 소유권과 계약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정의의 핵심원리로 놓는것이다. 결과과 불평등해도 자기가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에 정의롭다는 자유지상주의 정의론ㅇ다.
근거 : 극단적 자유주의적 정의론은 내가 내신체를 소유하고 있다. 그것은 마땅히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이 있다면그것을 가공해서 만들어낸것은 내것이다. 내 신체와 재능과 능력으로 자연물에 노동을 투여해서 생산물을 만들고 거래를 하는 것은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정의롭지 않은가? 하는 사고방식이 핵심 논리인것 같다.
이 결과는 사실 정의롭게 나타날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부정의한 결과가 있다고 판단하려면 좀더 살펴볼 것이있다.
자기신체를 소유한다는 논리가 정당한가? : 신체는 자기의 노력의 산물인가? 자기신체는 부모의 선택과 노력의 산물이다. 전적으로 개인의 것이 아니다. 부모 덕분에 나오게 된 것 아닌가! 또, 나오자마자의 바로 자기신체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 도움으로 자기의 신체가 형성된다. 자신의 언어 지능 능력 모든것이 전적으로 사회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중 상당부분은 부모님, 타인의 기여를 통해 형성된 것이니까, 자신이 신체를 소유할 자유가 있다는 대전제 자체에 오류가 있다.
로텐부르크 식인사건 : 2002년 독일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잡아먹히기를 원해 일어난 살인사건. 이것이 과연 합당한가?를 두고 굉장히 논란이 많았다. 굉장히 자기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 사람들의 직관적 판단은 그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자기의 신체와 자기 재능이 온전히 자기것이 아니듯, 자기의 신체가 온전히 자기 처분만으로 가능하징도 않다. 개인의 재산도 온전하게 자기것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 타인의 기여, 공공적 국가 시스템이 만든 공공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대전제 자체가 탄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화 분배의 근거로 자유지상주의자가 삼는 것은 오래 형성되어온 진리나, 사회역사적인 산물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형성된것을 정당화 시키거나 지금 상태를 변명하기 위해서일수도 있다. 교환을 위한 거래를 위한 대전제인 재산이 온전히 자기것이 아니라는 반론이다.
롤즈의 정의론 - 공정으로서의 정의
1971년 정의론을 출간한 존 롤즈는 서양의 사회계약론은 경제학의 게임이론을 결합해 평등적 자유주의와 공정으로서의 정의개념을 옹호하면서 정의는 공리주의로부터 도출될 수 없다고 논한다. 다수의 더 큰 행복을 위해 소수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은옳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할 기본적 필요를 보장할 때 비로소 인간 존엄성이 지켜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수의 더큰 행복이 소수의 이익을 무시하면서 성취되는 공리주의는 옳지 않다고 본 것이다. 평ㅈ등지향적 자유주의 정의론은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하며 가치의 불평등 배분은 그것이 사회 최소수혜자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논한다. 이는 최소수혜자의 최대 행복을 고려하는 이론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자의적인 불평등이 없는 상태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롤즈의 저서는, 이론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도 대단히 현실적인 희망과 요청과 관련된다.
자유지상주의정의론은 자기 재능이나 실력이 자기것이니까 그 결과로 나타난 불평등은 정당하다고 본 것이, 롤즈는 자기 재능과 노력과 근성이런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신이 우연히 준 것이거나 우연히 좋은 가정에 태어난 것이고 응분의 자격으로 본다면 마땅히 너의 것이 아니다.
공리주의는 개개인의 소망이나 열망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얼마든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롤즈는 자유지상주의와 공리주의가 대세였던 시기 미국사회와 자본주의의 핵심을 비판하며 독자적인 정의론을 형성하였다.
공정과 공평이 합쳐진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본 것이 롤즈의 정의론이다.
공정 fairness : 롤즈는 우리 일상에서 그 게임이나 경기나 일상에서 출발합니다. 예컨데 축구경기를할때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할 때에는 규칙이 각자가 들어가서 규칙을 만들고 협동을 할때 내가 이만큼 의무 지면 너도 지고 각자 욕구를 줄이는 것이 공정한 것 아닌가? 규칙을 만들때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거기에 따라 규칙이 만들어지면 자기 욕구도 좀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의원리에 이를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공정한 게임의 원칙은 규칙을 만들때 각자가 자기의 읜견과 이해관계를 개진하고 동등한 상태에서 규칙을 마들어내는 것이다.
공평 : 그래서 나온 공정한 규칙에 의한 결과가 불평등하더라도 각자 합당하다면 맞는것 아닌가? 그리고 그때, 가장 약한 사람의 처지를 개선할 수만 있다면 공평하다.
정의로운 사회는 그 두가지가 합쳐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슬로건이 ’공정사회’는 공평이라는 점이 빠져있다는 점에서 일면적인, 정의론으로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롤스의 개념 중에서 처음 경기할때 룰을 만들때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무엇을 배분할 것인가 를 생각하때 우리가 사회속에서 산다고 한다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재화가 있을 것이다. 기본권, 기본적 의무, 대학입학의 기회나 교육의 기회, 권력, 지위, 직장의 기회등을 배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들 인생이 걸려있고 자신의 자식이 걸려있고 삶이달려있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롤즈는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대표하는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고 쳐보자. 최초의 계약해우이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출신배경, 사회적 지위, 신체적 정신적 능력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자신들이 합의한 정의규칙이 불리할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최하위층에 속해있다고 하더라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규칙을 만들것이다. 가장 불리한 지위에 있는 자들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논리가 무지의 베일로 표현된 것이다.
롤즈에게 정당한 평등은 : 기본적 권리와 의무가 모든이에게 동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가능한 적절한 방식으로 무든 사람에게 분배되어야 한다. 그다음에 정치적 평등은 중요한 재화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두고 공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발언하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회 경제적 경우는 재능에 따라 열심히 해서 많이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능력과 노력이 있다면 똑같은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기회균등의 원칙을 제시했다. 세번째로는 부는 자신의 능력과 실력에따라 달리가질 수 있으나 응분의 원칙을 적용해보면 자기 실력과 재능은 원래 자기것만이 아니다. 그렇기에 많이 가져가려면 그 재능을 발휘해서 다른 사람에게 사회 전체적으로 이득이 된다면 그런 한에서는 자신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불평등한 몫을 가져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기여흘 하지 않은 불평등은 정당하지 않다. 사회경제적 재화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도 정당한 경우는 사회전체에 이익이 되고 사회 최소혜자들의 이익 개선에 기여한다면 그러한 것은 정당하다.
롤스의 정의론은 1970년 나오기 이전과 이후는 인류 지성사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아주 중요한 사상사적 위치가 있다.
과연 공정성만으로 정의에 도달할 수 있는가? - 마이클 센델의 정의론
국방을 위해 군대가 필요하다. 병역의 문제는 어떻게 해야 정의로운가? 철저한 징병제와 직업군인을 모병하여 유지하는 모병제와 혼합된 형태가 있다. 징병제는 한국, 이스라엘, 노르웨이등 30개정도 나라고 공동 방어체계가 형성된 유럽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실시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징병제를 유지하다가 모병제로 전환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자유보장하는 제도라고 신뢰한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다. 상류층 사회는 거의 지원하지 않고 중하층만 지원하기 때문에 모병제가 병역의무의 이행을 사회경제적 지위를 반영하는 제도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 찰스 랜잴 민주당 의원은 2003년, 모병제 아래서 병력 대부분은 빈곤층과 소수인종으로 이뤄진다고 논했다. 우리나라는 모병제 논의가 격화되지 않았지만 장기복무가 전문성을 확보하고, 의무복무자들의 기회비용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합당한 병역제도는 무엇일까? 공리주의나 자유지상주의자는 징병제와 모병제중 어떤 병역제도를 정의록다고 할 것인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상상해보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 모병제나 징병제 + 자기가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돈을 내는 유급의무대행제를 선택할 것 같다. 자유를 보장하고 가난한 사라람들이 병역의무를 하면 누이좋고 매부좋다고 할 수 있따.
롤즈 : 가난한 중하층 계급들이 모병제의 경우 주로 복무하지 않는가? 모병제에 찬성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공정한 사회, 공평한 사회에서는 어떨까? 모병제가 맞다고 생각할 수 있따.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있고, 그 심각한 문제를 지적한 사람은 마이클 센델이다.
모병제가 되면, 정치공동체가 병역의무를 덜지게 될 텐데, 전쟁 파병결정이나 하는 국회의원들의 쉬운 결정으로 인해 자기와 상관없기 때문에 파병결정을 너무 쉽게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틈을 끼어들어 군수산업체나 로비업체가 들어올것이다. 돈으로 군대를 살수있다는 생각을 할때 정말 위험할때 시민들이 나라를 지키겠느냐? 공장한 방식으로 평등하게 부담을 지우는 한해서는 징병제가 시민의 덕목을 구현하고 정치 공동체의 안전을 위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센델의 정의론이다.
정의론을 비판한 센델 : 사회적 연대와 시민적 덕목을 중시하는 공동체주의를 주장하는 마이클 센델은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의 다양한 예시를 보여준다. 정의로운 사회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소득과 부,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분배하는지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를 올바르게 분배하고 개인에게 합당하게 나눈다고 전제하며 분배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정의 판단의 기준으로 자유, 행복과 미덕을 제시한다. 정의가 사회구성원을 행복하게 하는지, 사회구성원 각각의 자유로움을 보장하는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가 정의의 결정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자유의 존중을 넘어 좋은 삶, 인간 사회의 미덕이나 공동선의 추구를 바람직한 삶이라고 보면서 이를 위해 정의를 공동체주의로 연결하고 올바른 가치측정과 판단을 통해 계속적으로 정의를 찾아가야한다.
센델의 이야기는 모병제나 유급의무대행제는 병역의 의무가 가진 본래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얘기다. 좋은 시민으로서의 역할, 좋은 시민의 덕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자유지상주의는 소비자로서, 롤즈는 공동체와 절연된 개인으로서 시민들을 인식한다. 이 둘은 정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갖춰야 할 덕목들을 고려하지 못하는 이론이라고 본 것이다.
센델은 ‘텔로스’라는 개념을 활용해 설명을 개진한다.
아리스토텔레스 : 어떤 존재가 있을때 그 존재가 함께 있는 것 : 텔로스 telos 목적
예컨데, 바이올린 아주 좋은게 있으면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 아무에게나 주는것은 안되는것 아니낙? 바이올린은 그것을 잘 아끼고 칠수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그 배분의 원래 취지에 맞는 것 아닌가? 바이올린이라고 하는 본래적 의미처럼 재화의 사회적 의미나 텔로스(본래적 의미)를 통해 공정성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센델은 사회 전체적인 목적이 ‘공동선’이라고본 것같다.
각자에게 각자몫을 정할때, 각자몫은 텔로스가 원래의 취지가 각자의 몫에 정해져있다고 하는것이라고 말한 것 같다. 각자의 몫이라고 하때 거기에 이미 배분되어야할 사회적 의미, 본래적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니 그것을 잘 포착하고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 같다.
샌델은 자유지상주의나 롤즈가 재화에 본래 담겨있는 본래 취지를 몰각했다는 것이 비판의 취지였던 것 같다.
자기의 정의관만이 옳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위해서 타인의 정의관을 국가권력을 이용해서 배제하려는 태도가 굉장히위험한 것 같다.독선적인 정의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여러 정의관이 공존해서 살아갈 수 있게 타인과 살아가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시민으로 사는 상태를 인정하면 독선적 정의관으로 빠지지 않을 것이다. (김도균)
understand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밑에 서있다는 뜻. 정의는 더 밑으로 내려가서 사회제도나 상대방 밑으로 내려가서 그것을 바라봐야 그 사회의 올바름을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정의를 이야기 할때에는 소수자 더 약한 사람, 더 밑에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들을 바라보고 거기까지 내려가는 자세가 정의를 파악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