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3일 금요일

팡세, 제7장 도덕과 교의


7장 도덕과 교의



  파스칼은 사람들이 오만하기 때문에 신을 보지 않으려 한다곤 논한다. 사람의 한계는 명백하고 영원한 것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사람은 능력에 한계가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인식하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온전히 알 수 없으며,  자신의 힘 만으로는 선(good)에 닿을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선에 대한 열망은 있다. 그런 딜레마 속에서 선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은 신과의 결합 뿐이다. 철학자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선을 찾으려 했으나 파스칼은 이것을 오만이라고 논한다. 철학이 인간을 신과 동등한 자리에 올려놓고자 하기 때문에 오만하다는 것이다.

  파스칼의 이런 주장에 대해 나는 두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사람들에게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명백히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능력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이 전혀 하나도 없다는 주장까지 정당화 되는 것인가? 다시 말해, 사람들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전혀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어떤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이 신에 의하지 않고서도 가능할 수 있다고 논하는 것은 왜 부당한가? 한계는 있지만 그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노력을 해왔던 것 처럼, 앞으로도 그 한계를 조금씩 뛰어 넘는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합리적이다. 전혀 아무런 개선도 불가능하니 인간은 오만함을 줄이라는 주장은 인간의 이런 한계를 넘으려는 노력을 거의 생각하지 않은 주장 같다.

  , 인간이 오만해서 생기는 문제는 무엇인가? 인간이 오만해서 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무엇인가? 인간이 의기양양하기때문에 만들었던 문제들은 많이 있다. 과학이 발전하기 시작했던 근대에서,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과신하고, 행동을 제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들은 많다. 따라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학자로서 중요한 문제 의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오만함을 극복하는 방법이 왜 꼭 신에 귀의하는 방법 뿐이어야 하는가?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영원에 대한 귀의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점진적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한계를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비관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간이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더 한계를 극복해 나가면 의기양양하고 해동이 제어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신만을 사랑하고 자신만을 증오해야 한다는 파스칼의 요청은 기독교가 인간에게 주문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 말은 즉 사람들이 자신만을 사랑하고 신(혹은 절대적인 것, )을 증오하게 된 것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이다.

 
Share:

Related Posts:

Categories

Popu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