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9일 화요일

[강의] 페미니즘 언어철학 기초 1강

기록자 : 김민기 (참고 : 기울어짐은 개인적 낙서)

사진 출처 : 말과 활 아카데미


1. 언어는 페미니즘에 있어서 왜 중요한가?

- 어째서 언어는 페미니즘에 중요할까?
1. 언어는 삶을 지배하는 의미 구조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우리가 스스로와 타인들을 이해하는 범주들, 그리고 우리가 누가 되는지 및 우리가 누구인지의 범주들을 포함하고 전달한다. 우리의 언어가 사회에() 영향을 주는(받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의 언어가 문화형성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언어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질 것이다. 언어는 정치적 투쟁이다.
2. 언어는 억압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하면서도 미묘한 상징체계로서, 언어는 성차별주의 이데올로기가 개발되고 강화되는 일차적인 수단이다. 언어는 분명 억압의 도구다.
3. 언어는 변화의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봐야 그 안에서의 변화라고 물어본다면?)
언어는 일종의 행동을 강화하고 심지어 창조할 수도 있다. 사회 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자들은 그것을 구체화하는 언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말은 우리를 보존시키거나 변형시킨다.

- 페미니즘 언어철학이란 무엇인가?
1. 페미니즘 언어철학은 비판적이다.
언어에 대해, 철학에 대해, 언어철학에 대해 비판적이며 이 비판에 근거해서 변화를 요청한다. 비판을 통해 페미니즘적인 목적을 향하는 변화를 요청한다.
2. 페미니즘 언어철학은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는다.
페미니즘은 물질적인 것에서 상징적인 것으로 이동했다. 즉 가부장제에 대한 사회학적인 이해로부터 젠더에 대한 탐구로 이동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무의식의 구성 속의 언어의 장소가 사상가들을 점령했고, 주요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언어철학적 바탕 위에서 남성 여성에 대해 철학적으로 탐구했다.
3. 페미니즘 언어철학은 사회적 맥락을 다룬다.
언어철학의 여러 주제들은(의미론, 기술주의 등) 어떤 사회적 환경과도 떨어져있다. 남성주류의 생산물들을 연구하면서, 언어가 인간 생활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기가 매우 쉬워진다. 페미니즘 언어철학은 언어 사용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관심이 특징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첫째, 페미니즘 철학자들은 다양한 인간 언어가 젠더 중립적인 것으로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남성이 표준이고 여성은 보이지 않거나 타자로 표현되는 세계관을 갖는다고 주장하면서 언어 자체를 비판했다. 둘째, 그들은 언어에 대한 분석 철학이 남성 편견을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지나치게 언어 사용 그림에 이끌려왔다고 비판했다(이는 5강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페미니즘 언어철학자가 의미, 지시대상 및 진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 사용 그림: 언어철학 이론. 전기 비트겐슈타인이 해당. 언어가 세계와 일대일로 대응한다고 보는 이론. 언어가 곧 세계. 언어사용에서의 참/거짓, 의미, 지시대상 및 진리에 대해 다룸.
4. 페미니즘 언어철학은 기술적이면서 동시에 규범적이다.
(기술적 - 현실에 대해 설명하는, 규범적 - ~해야 한다를 말하는)
페미니즘(언어철학)은 과거와 현재의 사회적 관습에서의 불평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기술적), 여성들이 번영할 수 있는 가능한 미래의 파악에 의해 표시되는(규범적) 어떤 이중의식으로 특징지어진다. 페미니스트 철학자들은 특히 누가 발언을 하게 되는가, 언제, 어디서 그리고 왜 발언을 하게 되는가를 물으면서, 점점 더 정치성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
5. 페미니즘 언어철학의 목표는 언어라는 모자 속에 숨겨진 규범성이라는 토끼를 이해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위한 언어철학의 진정한 기획은, 표현되는 규범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즉 언어가 정말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규범성이라는 토끼가 어떻게 발화라는 모자로부터 빠져나오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언어는 그 내용을 통한, 그 형식을 통한, 그리고 특히 그 구성적인 담론적 실천을 통한 사회적 규범의 생산과 재생산에 있어서 규범적이다(?? 이해 안 되는데 이해가 되네..). 우리가 여성들이 어떻게 담론으로부터 구성되면서도 역설적으로 지워지는지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재구성을 전체적으로 야기하고 설명하는 표현 및 정당화 과정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을 사용할 수 있다(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한 쪽 끝에서 깊게 체현되어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거의 규범적인 관습들이라고 분간할 수 없는 명백히 규범적인 관습들을 갖고서 말이다.

- 언어를 바라보는 두 가지 대립된 철학적 견해 : 기술주의와 언어구성주의
한줄요약: 언어는 가치중립적이다(기술주의) vs 언어는 규범적이며 차별을 내포한다(구성주의)
메리는 좋은 엄마이다는 어떤 규범성을 숨기고 있다. 다른 좋은 엄마 주장들이 그렇듯이, 이는 어떤 행동들을 강화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는 행동들을 반대하기 위해서 사용된다(언어는 대부분 언어에서 끝나지 않으니까. 혹 언어에서 끝나는 언어도 있는 건가?). 메리는 좋은 여성이다는 명백히 규범적인 것처럼 보이지도, 인간의 섹스나 젠더를 규명하는 실천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비록 그런 주장들이 단지 기술적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가 다소 넓은 일련의 규범들을 이미 받아들인 경우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했다(보부아르 1952, 호글랜드 1988, 페넬로페 1992, 위티그 1992, 버틀러 1993) 섹스와 젠더에 관련한 규범들은 우리 문화에 너무나도 깊게 체현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자연화되었다(칭찬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바라보는 시각의 높이차가 있다).
언어를 철저하게 규범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견해는 언어가 일차적으로 기술적이거나 표현적이라는 견해, 즉 언어의 목적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가, 사물들은 어떠한 것인가를 포착하거나 전달하는 것이라는, 더욱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들과는 상충한다.

- 기술주의
한줄 요약 : 기술주의는 언어가 사물을 재현하고 보고한다는 이론.
담론에 대한 기술적 접근은 섹스를 그것들이 기술되고 있는 것에 앞서 존재하는 몸에 대한 일련의 주어진 사실들로 간주하고자 한다. 초기 비트겐슈타인은, 단어들은 사물들에 대한 이름이며 문장들은 사태에 대한 그림이라고 주장했다. 그 외 대부분의 20세기 언어철학자들은 언어를 현실에 대해서 구성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기술적이거나 표현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그런 견해에서는, 여성은 여성이고 남성은 남성이며, 비록 생물학적으로 쉽게 규정할 수 없거나 과도기에 있는 몇몇 불행한 개인들이 있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규칙을 입증하는데 있어서 단지 예외일 뿐이다(omg....) 기술주의는 일종의 현실주의이며, 언어구성주의를 멀리한다.
Ex) 용의女. 그냥 여성을 여성이라 한건데? 그러나 분명히 맥락이 있다.

선생님은 페미니스트이면서 동시에 기술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언급하심. 일면 이해되는데..
Q. 기술주의 페미니스트는 사실 오히려 추구해야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이를 차별 없이 담백하게 기술하는 것이 가능하다면요.
A. 가치중립적인 언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아니!! 어떻게?). 그렇다면 기술주의 페미니스트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지적 감사하다.

- 언어구성주의
언어구성주의는 어떤 언어에 앞서 그 전에 존재하고 있는 물리적인 현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가 파악하는 것에 대한 주목을 지배하는 우리의 담론적인 실천들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차별화된 주목은, 어떤 대상이 더 이상 자신이 시작했던 것과 닮지 않는 지점까지 사실상 그 대상을 변형시킬 수 있는 어떤 실천에 대한 강조를 만들어낸다.
물리적인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언어화하고, 그 언어가 때묻기 시작하고, 변해버리는 지점을 밝힐 수 있다/밝히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인 듯?
사실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믿음이 궁극적으로 그 믿음에 근거를 제공해주는 관습들을 낳기 때문에 사실이 된다고 주장한다.
Fact Fact가 아니다. 이미 기존의 문화적 규범, 믿음, 시선을 통해 선별되는 것. Ex) 오리냐 토끼냐.
푸코는 섹스는 권력의 도구이지 본질이 아니라고 말했다. 푸코가 우리가 현재 섹스라고 부르는 인위적인 통합체의 창조에 앞서는 몸이나 행동이 없다고는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에 주의하자. 위티그가 섹스는 없다. 오로지 억압받는 섹스와 억압하는 섹스가 있을 뿐이다. 섹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억압이지 그 역은 아니다라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위티그에 따르면, 몸을 섹스화된 것으로 개념화하는 것은, 자신들을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방식으로 우월하게 상상함으로써 남성들에게 유용했던 어떤 권력게임이었다.
인간 몸의 많은 차이들은 이 차이들이 표시되지 않는 한 그야말로 무의미한 것이다. 사회적인 맥락이 없다면, 그것들은 의미화되지 않는다. 규범의 구조 내에서만 그리고 그에 맞서서만 이런 단순한 차이들이 그 이상의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즉 사회가 가치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에 누가 더 많은 접근권을 갖는가를 확립시키는 어떤 구성원리인 것이다.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라라는 규칙을 갖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실험의 진행자마저 파란 눈을 가진 주제에 실험을 진행하냐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고 한다.

Q&A 및 생각거리

Q. 차이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차이에 의미는 어떻게 발생하며 차별은 왜 발생하는가. 아무 의미 없는 차이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정말 차이는 있는가?(하고 물어야만 할 것 같다)

Q. 이분법 아닌 언어가 가능한가?
언어라는 건 기본적으로 이분법이다. 같음과 다름을 뇌가(인식적으로) 규정하는 행위가 바로 '단어화'이기 때문이다. 이분법은 둘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를 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분법은 필연적으로 '높이차(위계)'를 갖는다. (여기서부터는 질문) 언어가 이분법이라면 언어 역시 필연적으로 위계를 가질 것인가? 위계 없는 언어라는 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면 위계를 갖는 언어를, 자꾸자꾸 만들어내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
(추가 생각) 그런데 '일대일 대응' 생각해보기. 언어가 세계와 일대일 대응이 아니라면, 언어가 기본적으로 이분법이라는 게 성립할까?
Q. 혐오발언. 발언과 현실 사이의 틈이 있음. 구성주의에 따르면 적극적으로 틈을 전유해서 전복시킬 수 있는가. Ex) 너 걸레였냐?” “마져 나 그거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렇게 불러줘서 고마워!
A. 입장은 둘. 이미 구성된 것에 쉽게 균열 낼 수 없다고 보는 입장과, 실천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

Q. 언어철학과 언어학의 차이는?
A. 철학은 좀 더 메타적임. 과학은 과학을 다루지만 과학철학은 과학이란 무엇이며 다른 것과 왜 다른가 등을 고민한다. 언어학에서도 하기야 하겠지만..

Q.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끼친다? PC운동에 대해 궁금함. 이것이 강요라면 자유를 너무 압박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그럼에도 PC운동을 지속할 때에 어디까지 강제할 수 있는가?
A. 혐오발언을 규제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은 굉장히 논쟁적. 소수자에게 어떤 것이 더 정치적으로 유리한가에 대해 방점을 둬야한다는 부분만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마저 논쟁적. 과연 어떤 것이 더 유리한가? 소수자들에게는 많은 경우 표현의 자유가 쉽게 부정적으로 판단됨. 그러나 우리의 소중한 무기가 바로 표현의 자유였다라고 말하는 페미니스트도 존재(누군지 못 들었어..).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면 지금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되려 우리가 규제당한다. 그리고 유민석쌤 본인도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임. 지금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규제의 대상 1호 아마 메갈리아가 될 거라고 생각함.

Q. 메갈의 미러링. 너무 위험하다?(전형적인 질문)
A. 완전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대답하겠다. 다른 혐오를 재생산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논쟁적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래도 되는가? 그리고, 그때 그것은 누가 판단하는가?
그러나 남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counter-speech라고 생각한다. hate-speech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함. 그리고 혐오발언을 그대로 활용한다면 그 이상의 전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도 함. 교차성까지 고려해보면 counter-speech적 요소보다 혐오재생산 요소가 더 크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메갈리아가 발화주체의 권력을 되찾은 점은 굉장한 페미니즘적 성공이라고 생각함.

Q. 원본 자체가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미러링이 폭력적인 것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걸 드러내서 전복하자는 의미 아닌가.
A. 메갈리아의 언어는 Counter-speech가 절대로 맞다. 그러나 모든 언어가 그렇듯 단점도 있다. 분명하게 폭력적 요소가 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죽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원본이 폭력적이기에 미러링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미러링에서의 hate-speech적 요소는 독립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크게 보면, 기존의 혐오발언을 누그러뜨린다는 점과, 그리고 발화권력을 뺏어온다는 점에 의해서 페미니즘적이고 정치적으로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온라인에서의 활동이 효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아니더라도 말이다. (온오프라인의 구분이 어려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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