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법실증주의
1972년 10월 17일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민권리를 잠정적 정지하는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유신헌법 제 54호 긴급조치는 헌법 초월하는 권력을 대통령에게 주는 사상초유의 사건이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헌법적 가치인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물론 유신을 개정이나 폐지 주장을 하는 모든 논의를금지하여 헌정체계를 좌우하는 1인 독재체제를 공고히 했다.
7년간 지속되었는데, 그동안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매우 제한되었으나 헌법은 이에 대한 사법심사를 금지했다. 헌법적 가치를 무너뜨렸던 이 긴급조치는 1980년 헌법개정으로 폐지되었고, 2013년은 대통령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판결이 내려졌다.
최근 우리 대법과 헌재의 판결을 보면 긴급조치가 지금와서 보니 유신헌법에 비추어도 법이 아니었다고 하는 판결이다. 당시 긴급조치를 적용한 법관들의 인터뷰는 ‘법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법관 개개인잘잘못이라기 보다는 당시 법관들에게 그렇게 할수밖에 없는 두가지 장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헌법적인 장애는 유신헌법이 가지는 한계다. 법관은 ‘이’헌법 에 따라야 한다고 구속되어있었다. 개정된 헌법에서는 ‘이’라는 것이 빠져서 이전의 헌법적인 흐름을 고려할 수 없게 했다.
또, 법철학적 장애도 있었는데, ‘악법도 법이다’등의 법실증주의적 입장이 당시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공식적 견해였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는 이론적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이 내려질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법이다 왜냐하면 법이니까 법이다 <— 왜 법을 지켜야 하냐? 왜냐면 이 법을 지켜야 하니까 지켜야 한다.
법과 상관 없이 아주 단순히 논리적으로만 이야기 하면 생각만 해보면 말이 안된다고 할 수 있지만, 당대에는 이것이 당대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었다. 이런 사고를 법실증주의적인 사고라고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책이다. 사람들은 뒷말을 기다리고 궁금해할 것이다. 그러나 법은 법이라고 할 때에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앞의 법은 현실에서 우리를 구속하는 법이고, 뒤에있는 법은 우리가 지켜야되고 준수해야되고 받아들여야 하는 내용이 담긴 법이라는 의미다. 바로 우리가 법이 우리에게 가지는 영향력과 구속력, 권리를 제한하고 보장하는 위력때문에 법은 법이라는 동어반복적인 문장을 큰 의미가 있는 문장인것 처럼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싶다.
법실증주의의 등장 : 본격적 사조나 흐름은 서구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국가체제가 등장하고 한 국가를 관할하고 주권이 생겨나 모든 구성원에 일반적인 규칙으로 통치하겠다는 발상과 맥을 같이 한다. 역사적 배경은 국가의 전 사회 구성원이 누구나 다 공통된 규칙을 알고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하고, 재판하고 통ㅈ하겠다는 그러한 생각, 법규범이 객관적으로 조냊하고 그 내용을 누구나 다 인식하고 그것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실정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법실증주의의 등장의 핵심이었다.
유럽은 도량형 화폐도 다르고, 다른 지역에서온사람은 다른 지역의 관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량형 통일이나 규범의 통일과 같이 설득력있는 법적 사유가 역사적 궤적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법은 법이라고 할때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앞의 법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버이고, 뒤의 법은 공적으로 우리의 행동을 제한하고 보장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규범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것이 법실증주의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퍼질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법실증주의적인 경향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거나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인류역사의 진보에 큰 획을 긋는 주제이기도 했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잇고 명확히 알 수 있는 법이 있다는 것과 내가 알수없는 법으로 마구 재판받는 것은 큰 다른 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진보된 경험을 주었던 법실증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어디에서 왔을까?
인류가 경험했던 비극적인 경험에서 왔을 것이다. 히틀러의 나치시대, 유신시대 등 사람들이 느끼기에 너무 부당너무도 불합리 하지만 하지만 법은 법이다, 명령은 명령이라는 구호때문에 꼼짝못하고 무장해제된 경험이 있었다. 이것이 법실증주의의 진보적 성격과 기능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비참성과 반인륜성을 띤 경험때문에 그러한 부정적 인상을 가지게된 것 같다.
그렇다고 예전으로 돌아가자. 그렇다고 확정적 법규범이 없는 시대로 돌아가자고는 할 수 없다. 법실증주의의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법은 공동의 약속이라는 말이 있다. 법실증주의는 신이 부여하거나 소수의 철학자들만이 아는 지혜가 아니라 일반적 사람들이 약속하거나 인식할 수 있게 만든 규정이고 누구나 인식가능하게 절차에 맞게 공포하고, 기록하고 확인할 수 있는 제정방식을 거치게 한다. 그렇게 되면 권력자 스스로도 은밀한 통치가 아니라 자신도 그 법률에 구속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권자는 왕일수도 있고 귀족일수도 있고 다수의 국민일수도 있다. 주권자로 불리는 영토를 관할하는 담지자가 있고, 구성원에게 모두 적용되는 규칙이 있는것 외에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다른 원칙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법실증주의자들이었다.
영국의 common law는 왕이 임명한 판사가 판례를 공통되기게 하는 것이었듯이, 당시 법실증주의자에게는 권력을 가진 주권자가 전 국민에게 공포하는 명령은 누구나 다 인식할 수 있다는, 주권자의 명령이라는 발상이 불분명하고 지역마다 다른 법이나 법원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객관적인 내용을 갖는 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대적 차원의 주권자는 국민이고 국민의 위임을 받은 의회이기 때문에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발한 명령이고 같은 사건에 같은 법을 적용하고,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명확히 인식가능한 방식으로 제정되었기에 정당하다는 것이 법실증주의적인 사고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약속, 인간이 만든거이다. 인간의 상호작용이 만든 것이라는 것이 법실증주의의 핵심이다.
법은 좋은 법이든 나쁜 법이든 나쁜 내용이라도 담겨있어도 법은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 법실증주의의 입장이다. 당시 19세기는 지역마다 윤리와 도덕이 다르기에 특정지역에 특정계급에 도덕을 법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 (법고 도덕의 분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법실증주의는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요소는 담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연관되어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법실증주의의 초창기는 주권자의 명령이라는 명령주의적 입장을 취하다가, 현대사회로 흘러오면서 현대 의 많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모습을 띄기도 한다. 그래서 영국 법철학자 1960년에 법의 개념이라는 책을 내고, 법실증주의의 한계를 제시한 이후에 명령주의를 강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무척 적다고 할 수 있다.
하트가 명령적 법실증주의 비판하는 요지는 “그렇게 주권자의 명령으로본다면 권총을 든 강도의 명령과 무엇이 르냐?” 하고 말한다. 법이라고 말할 때 그렇게 따라야 하는 의무라고 말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권총강도가 돈을 달라고 명령하면 우리는 그 명령에 따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지 의무가 아니다. 법과 다른점을 규명해야한다. 의무를 낳는명령이려면 어떻게 해야되나? ‘권총을 가지고 돈을 내라는 것에 따라야 한다는 상위 근거 규범이 있다면 그것은 따라야만하는 의무가 된다. 그래서 하트는 최종상위규범에 의해서 권한을부여받은 명령들이 법으로 인정된다고 보았다” 상위 근거규범의 규정과 존재와 효력을 설명해내지 못하는 명령은 악당의 명령과 민주적 다수의 명령이라도 주권자의 명령을 구별할 수 없다.
명령이니까 법이라고 하는 것은 부족하다. 명령을 명령이게 하는 상위규범의 것은 두개로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명령을 명령이게 하고 정당화게 하는 것. 또, 현실의 절차 속에서 법이게 만드는 것이 있다. 하트의 경우에는 개별적 법규범이나 또는 명령, 의회의 결정을 법으로 만드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속에서 생겨난 관용이 있다고 봤다. 어떤 규범을 특정 기준에 따라서 법규범으로 인정하는 법승인의 법적관행에 따라 법이 승인된다는 승인규칙이 있다고 보았다. 하트의 경우 시민들은 법에 문외한이기에 법률가, 특히 법관들 사이에서 법이라고 인정하는 관행이 있다면 일단 승인 규칙으로 보고 일반 시민들은 여러 경로로 알게될 것이다. 전형적인 영미법계의 common law시스템의 이해라고 볼 수 있다.
하트와 켈젠의 입장 비교 : 켈젠은 상위규범을 따라가면 근본 규범이라는 최고규범이 있다고 상정했다. 인류가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인류가 있을 것이다. 바로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적인, 논리적인 존재다. 근본규범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최초의 어떤 것이 존재해야만 후손이 나오듯이 실제로 확인할 수는 없는 근본규범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하트의 규칙은 인류최초의 실제 존재하는 화석의 것을 규범의 근거로 삼자고 했던 것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즉 켈젠의 근본규범은 가상적이며 논리적인 규범으로 법질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전제된 규범을 말하는 것이다. 켈젠의 경우 근본규범 발상은 20세기 초반의 헌법을 만들고 법치주의와 입헌주의가 만들어지는데 굉장히 중요한 사고의 바탕이 되었다.
결국 켈젠에게 비판을 많이 하고 스스로도 자문을 많이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헌법을 진정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있기 때문에 근본 규범으로 인정했다. 모두 근본규범을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실효적인 강제질서’로서의 헌법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재판에서 경국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근거를 찾아냈듯이, 켈젠도 법질서의 헌법을 헌법답게 만드는 상위 규범을 거슬러 올라가 찾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트의 승인율, 켈젠의 근본규범 : 불만족 스럽긴 하다. 상위규범에 따라서 이것이 규범이된다고 이야기 하는데, 관행에 따라서 규범이 된다고 이야기 하는데, 이러한 실증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장점은 무엇인가? 켈젠은 오스트리아 사람이고 그당시 오스트리아는 다문화제국이고 막 무너지고 있는 참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려면 켈젠 생각에는 다양한 인종, 윤리, 종ㄱ의 지배에서 벗어나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중립적인 법질서와 특정 개개인의 입법자가 제기한 명령이 아닌 통일된 단계벌 질서에 의해 효력을 발휘하는 법질서라가 있다면 그당시가 안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대 한국주의의 다문화 다원주의에서 각자의 가치관과, 입장과 독립되면서도 통일적인 체계를 가진 법질서가 있을때 분쟁해결이 원만하고 공존할 수 있게 되는 것일 것이다. 하트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속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규칙과 의사소통의 산물을 중시했다는 점은 위에서부터 수직적으로 근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위로 자라오는 법규범을 포착하는 노력이고, 현대 민주주의사회에서 그 함의가 크다.
초창기 법실증주의 등장이나 현대 법실증주의의 이론들은 나름대로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질서를 중심으로 하거나 법적 안정성을 만들어 낼 규범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 그것에 기반에는 사람들의 많은 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래서 나름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법실증주의자
옥스포트 조세프 라즈라고 할 수 있고, 미국 예일대학의 콜론이라는 학자가 있다. 국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면서도 법원리의 규범성을 인정하는 법학자들이 많이 있다. 법원리주의는 실제로 누구나 다 판례로 남아있고 그것이 법규범으로 명기되어있다면 법실증주의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도덕 정의 인권과 같은 기본적 법원리도 법규범이라고 말하는 포함적 법실증주의라고 할 수있다. 그러나 모호하다고 얘기하는 배제적 법실증주의도 있다. 조리나 정의, 도덕과 같은 원리는 법외적 규범이라고 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