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노동, 가족, 그리고 흑인 여성의 억압
“이세상의 짐을 지는 노새”로 취급되는 것이 흑인 여성 억압의 심장부다. 흑인여성은 사람이기보다는 풍경의 일부로 비인간화된 대상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외부에 존재하는 착취적 노동뿐만 아니라) 흑인 여성의 무급 노동은 흑인가족 네트워크 안에서, 예컨대 남자친구, 친척,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정책에 의해 착취되는 방식은 여전히 무시되고 있는 연구주제다. pp. 93-95.
흑인여성의 노예화는 출산 통제라는 요인을 한 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노예인지 아닌지는 출산한 어머니의 status를 따르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노예 흑인 여성의 출산은 통제되었고, 섹슈얼리티의 통제를 통해 노예의 수를 늘리고자 하는 노예주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임신이 흑인 노예 여성의 중요 기능으로 간주된다. 흑인 가족 네트워크에서 흑인여성이 차지하는 중심성은 가모장적 혹은 여성이 지배하는 가족 단위와 동일한 것으로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가모장 명제는 누군가가 ‘다스려야’한다는 가정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흑인 남성이나 여성은 모두 흑인가족 네트워크를 다스리지 않았다. 103p.
노예 해방시기 이후 흑인여성에게 문제는 흑인남성과 동등한 경제적 지위를 성취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가족생활에 필요한 수입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흑인 여성은 해방 이후에도 흑인 남성과 백인 남성 양쪽모두에게 손쉬운 사냥감이라는 이미지를 얻기도 한다. 흑인 여성이 노동시장에 나가려하지 않는 것은, 중산층 백인 여성의 가정을 흉내 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한 노동의 가치를 자신의 가족에게 돌려주고 가사노동 서비스 일을 하며 참아야했던 성희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착취적인 노동시장에 나가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pp. 107-108.
도시화에서도 여전히 흑인여성들은 복종심을 강요받고, 고용주에게 ‘소유적’인 존재로 일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취급당하는 것. 롤린스는 이를 “인간으로서 나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모욕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예속의 이런 측면이었다. (...) 나의 인간성, 심지어 때로는 내 존재 자체를 절멸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표현한다. 112p.
2차 대전 이후의 정치 경제 속 흑인여성 : 저임금 노동계급 흑인여성에게는 가족이 희망사항이 되고, 혼자 아이를 양육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흑인여성이 결혼하려 하지 않는 이유는 흑인남성의 경제적 취약성이 노동계급 흑인여성 사이에 빈곤의 증가를 부추기는 근본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혼자 아이를 양육하는 흑인 어머니는 노동하는 신빈곤층이 되고, 그들이 수행하는 일은 가사노동과 닮아있다. 이들은 도시지역에서 가족을 부양하느라 지치고 불안하며 건강도 안 좋다. 이들의 딸들은 가장 애정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정서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고, 이런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되면 자녀를 혼자 키우기로 결정하게 된다. 중산층 흑인 여성의 삶은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세 측면에서 보두 백인 중산층과 다른 삶을 산다. 자신은 성공했지만 자신의 가족들은 여전히 가사노동과 닮은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며 사는 이중성을 경험하거나, 자신의 취약성과 전통적인 젠더차이가 결합되어 억압의 여러 패턴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 전문직 미국 흑인 여성은 자신과 결혼하려고 하는 흑인 남성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 시대에 따른 흑인 여성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제시한 126-127 참조. 즉 흑인 여성이 겪는 경험은 결코 획일적이지 않음. ~127.